2024년 12월 28일 오후 2시 주한이스라엘대사관 앞에서 거행된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집단학살 규탄 집회에 참여했다.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이 주최한 행사였다. 포스터에는 팔레스타인 차를 나누어 받을 수 있게 보온병을 준비해 오라는 공지가 있었다. 일찌감치 도착해서 여기서 만나리라 예상치 못했던 반가운 사람과 호들갑스럽게 안부를 주고받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노래를 부르고, 자유 발언을 들으며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내내 서 있느라 추위에 몸이 곱아들었다. 지금이라도 차를 받을 수 있을까. 언 몸을 녹이려는 마음 조금에, 팔레스타인 차란 어떤 것인지 호기심 아주 더 많이. 나눔 테이블로 가서 집회 운영자가 양은 주전자에서 따라주시는 뜨거운 차를 받았다. 선홍색이 감도는 특이한 향의 차였다. 어쩐지 솜털 꽃의 가무잡잡하고 납작한 작은 씨앗 무리가 연상되는 풋풋하고 신선한 향이었다.
집에 돌아와 검색하니 세이지가 주원료인 차라고 추정된다. 그리고 차의 원료에 관한 간단한 정보를 넘어 팔레스타인의 식량 주권과 그것을 침해하는 이스라엘의 조직적 억압의 역사를 배우게 된다.
팔레스타인의 전통 차는 말린 세이지 잎을 우려서 꿀을 탄 것이라 한다. 세이지는 꿀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향초로 팔레스타인에서 마라미야, 마라미예, 메라미예, 미라미예 등으로 불린다. 이 명칭은 다음의 설화에서 유래한다. 예수의 어머니는 우리에게 그리스어-라틴어의 영향으로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하지만, 아람어로는 마리암 또는 미리암이라 한다. 베들레헴에서 갓 낳은 예수를 데리고 헤롯의 영아 살해를 피해 이집트 피난길에 올랐을 때, 마리암은 고단한 몸을 달래고자 잠시 덤불 곁에 앉아 그것의 가지를 꺾어 얼굴을 닦았다. 마리암은 식물의 향기로운 잎사귀에 새로 기운을 차렸고, 이로부터 풀은 그의 축복을 담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¹
여러 자료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식량을 구하는 데 있어서 농업과 목축업 외에,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덕을 입어, 그보다 훨씬 오래된 채취 활동에 주요하게 의존해 왔다. 팔레스타인 영화감독 주마나 만나(Jumana Manna)는 다큐멘터리 〈채취하는 사람들(Foragers)〉(2022)에서 이를 탐구한다. 만나는 팬데믹 시기에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에 있는 고향에 머물면서 어머니와 함께 근처 언덕과 골짜기에 널린 야생 먹거리를 채취하러 다녔다. 격리 생활의 지루함을 해소하려는 목적이 없지 않았던 만나의 시야에 마을 가장자리 멀리 난민촌이 들어오고, 유년기로부터 현재까지 교묘하게든 강압적으로든 이스라엘의 아랍계 차별 정책에 의해 언덕과 마을 풍경이 변모한 과정이 상기되면서, 식물 채취는 그저 하룻저녁의 양식을 구하는 순박한 활동만은 아닌, 팔레스타인의 영토와 식량 주권, 아랍계 주민의 생활 양식과 문화, 자연과 인간의 지속가능한 접촉을 수호하려는 정치적 저항의 문제로 확장된다.²
쿠베이제, 쇼마르, 자타르, 엘트, 후메이드, 루프, 투투, 할라이윤, 아쿠브... 서안 지구의 언덕과 골짜기에 봄이 찾아올 때마다 만나의 부모가 채취한다는 낯모르는 식물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한 음절씩 따라 읽고 써본다. 팔레스타인 야생 식용식물 도감을 발견하고, 가 본 적 없는 땅에서 그것들이 어울려 이루는 풍경과, 그것들과 함께 생존하는 사람들과, 이중언어로 도감을 제작하고 배포하는 의지의 근원을 상상한다. 어릴 때 양지바른 시골 둔덕에서 캔 돌나물, 쑥, 냉이와, 잡초 틈에서 먹을 수 있는 순한 나물의 모양새를 알아보는 눈을 길러준 엄마와 이모들과, 살아오면서 여러 사람에게 감사히 받아먹은 두릅, 엄나물, 고사리, 도라지, 더덕, 참나물 같은 직접 채취한 생채들을 떠올려 본다. 팔레스타인과 한반도의 거리를 넘어, 땅, 공기, 식물, 인간이 매일의 작은 생을 지속하기 위해 함께 참여하는 접촉과 번역과 변신의 시간을 생각한다.
이스라엘자연공원관리국(Israel Nature and Parks Authority)은 1977년과 1995년에 걸쳐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아쿠브, 자타르, 마라미예, 세 종의 식물 채취를 금지하고 이를 어길 시 벌금과 징역으로 처벌하는 법령을 발포했다. 아쿠브는 아스파라거스와 아티초크와 비슷한 식물로, 거의 신석기 시대부터 자취가 발견된, 팔레스타인인의 식생활에 아주 중요한 먹거리라 한다. 자타르는 타임이나 오레가노 같은 향초로 주로 양념으로 쓰이고, 마라미예는 앞서 말한 대로 향초이자 차의 원료이다. 이스라엘 당국은 무분별한 대규모 채취로 인해 개체수가 줄어들었다는 이유로 이 셋을 보호종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여러 연구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오랜 세월 야생 식물과 공생하면서 자연으로부터 먹거리를 얻고도 널리 살리는 지혜를 계발하고 전수해 왔고, 이들의 적절한 채취 활동은 오히려 식물의 번식과 생장을 촉진한다. 따라서, 이스라엘 당국의 채취 금지법은 식물 보호를 내세워 팔레스타인의 영토, 식생, 문화를 조직적으로 통제하고 말살하려는 녹색 제국주의의 일환이다.³
2023년 12월 5일 알자지라 영어 채널(Al Jazeera English)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짧은 동영상 한 편을 올렸다. 가자 지구의 밤거리에서 어린 여자아이가 행인들에게 주전자에서 차를 따라 팔고 있었다. 여러 매체에서 유사한 동영상이 올라왔다.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집을 잃은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차 행상으로 푼돈을 벌거나, 기자에게 집에서 끓인 차를 갖고 나와 플라스틱 컵에 대접하며 고마움을 표현한다. 차를 나누어 마신다는 것은 결국 우리 중 누군가 현재 겪는 고통에 동참하는 것, 생을 파괴하는 군사적 폭력에 저항하는 것, 땅, 식물, 인간이 공조하는 지구의 역사를 계속 살려 쓸 것이라고 뜨거운 향을 돌려 맡으며 약속하는 것이다.
¹ Grace Mary Hood Crowfoot and Louise Baldensperger, From Cedar to Hyssop: A Study in the Folklore of Plants in Palestine, Sheldon Press, 1932, p. 79.
² Jumana Manna, “Where Nature Ends and Settlements Begin,” E-Flux Journal, 113, Nov. 2020,
https://www.e-flux.com/journal/113/360006/where-nature-ends-and-settlements-begin/
³ Irus Braverman, "Green Gold: The Akkoub's Settler Ecologies," 19 LA+: Interdisciplinary Journal of Landscape Architecture, 38, 2024, pp. 40-45, https://digitalcommons.law.buffalo.edu/journal_articles/1221;